DEVYL의 酎저리 酎저리 -넷째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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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 말도 못다 이르고 가나니

난투극의 허망한 끝,

자코 패스토리어스

(Weather Report 外, 1951. 12. 1. ~ 198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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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지미 핸드릭스가 최고이고 베이스는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최고라고 자부하던 자코 패스토리어스도 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적으로도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에 있어서 신기원을 이룬 이 인물은 1987년 불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951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1958년 마이애미로 이주한다. 그리고 13세 무렵에 자신의 첫 밴드인 ‘소닉 센스’를 조직하여 연주활동을 시작한다. 베이스의 대가인 그이지만 첫 포지션은 드럼이었다.(실제로 그의 할아버지는 군악대에서 드럼을 연주했으며, 아버지는 빅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그러나 얼마 후 풋볼시합 도중 발생한 손목골절 사고로 인해 베이스로 전향하게 되었다.

 

10대 시절부터 마이애미 포트로더데일 지역의 여러 밴드에서 베이스 연주와 편곡을 하며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던 그는 1968년 여름 획기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포트 로더데일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네모 스플리프(Nemo Spliff)라는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되는데 베이시스트 카를로스 가르시아의 연주에 푹 빠진다. 공연 후 돌아오는 길에 네모 스플리프의 테입을 모두 사서 열심히 카를로스 가르시아의 주법을 연습했다. 카를로스 가르시아에게 영향을 받은 주법들은 이후 자코의 여러 음반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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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R&B와 팝을 주로 연주하던 그는 1975년 Blood Sweat & Tears의 드러머 바비 코란비와 만나게 되고, 바비의 주도 하에 주목받던 신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의 데뷔앨범에 밥 모제스와 함께참여하게 된다. 이 시기 메스니와의 인연으로 자코는 마이애미 대학의 강단에 서기도 한다.
1976년은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해였다. 바로 마이애미를 방문한 퓨젼재즈밴드인 웨더 리포트의 조 자비눌을 만나 웨더 리포트에 가입해 ‘Black Market’ 앨범을 발매하였고, 첫 솔로앨범 ‘Jaco Pastorius’도 발매하게 되었다.
이 이후 자코는 6년간 웨더 리포트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웨더 리포트에서의 시기(1976 ~ 1981)를 이후로 하락하게 된다.

 

1981년 두 번째 솔로앨범 ‘Word of Mouth’는 기대와 달리 미국에서 실패를 하게 된다.(오히려 일본에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앨범명을 딴 ‘Word of Mouth’라는 밴드를 조직해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던 그는 1984년경부터 각종 마약과 알콜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게 되며, 급기야 1986년에는 약물과 알콜로 인한 정신불안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퇴원 후 드러머 브라이언 멜빈과 함께 그의 생전 마지막 레코딩이자 후기 명작인 ‘Standard Zone’을 녹음하게 된다.
1987년 그는 프랑스 기타리스트인 ‘B. LAGRENE’과 생전 마지막 활동(유럽투어)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11일.
카를로스 산타나의 공연을 관람하고 플로리다주 윌턴 매너스에 있는 한 회원제 클럽에서 안전요원(쉽게 말하면 기도(木戶))과 입장 문제를 놓고 난투극을 벌인 후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19일 뇌사상태에 빠진 후 21일 가족들의 동의하에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사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맞아’죽은 것이다…
P. S. 그의 아들 펠릭스도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2014년 자라섬 페스티벌에서 밴드 The Yellow Jacket과 함께 공연한 적이 있다.)

 

뜬금없는 추천곡 : Fight – Beneath The Violence

 

 

Devyl(thestream@thest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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