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기 있어요~

A석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에게

먼저 잠시 최면을 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기자가 아닙니다.
달달하게 녹아버릴 것 같은 노래 소리에 취하고,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격렬한 춤사위에 매료된 관객일 뿐입니다.
배우와 무대를 향해 열렬히 박수치고 환호하는 그런 관객으로…
레드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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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이라도 괜찮아

멋진 공연이였어요.
아름다운 노래 소리, 멋진 앙상블, 화려한 세트….

 

‘아, 이게 뮤지컬이구나.’ 싶었어요.
물론 영화관처럼 배우들의 얼굴이 대형스크린을 가득 채우게 볼 순 없어요.
하지만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연기하는 당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관객을 흥분시켜요. 무대 위의 긴장감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짜릿함!
그래서 계속 공연장에 오나봐요.
비록 무대 위 당신들이 면봉만하게 보이는 값싼 2층 A석이라도…….

내가 앉은 이 자리는 가격이 가장 싼 A석이에요. 대형공연장은 대부분 4종류로 나눠졌죠. 무대와 가장 가까운 VIP석부터 R석, S석, A석. S석과 A석은 주로 2층, 때로는 3층에 있죠. 가격도 많이 차이 나요. VIP석과 A석이 많게는 5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죠.
물론 여유가 있다면 늘 좋은 자리에서 당신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있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늘 여유롭지가 못하네요.
2시간짜리 공연을 한 번 보는데 십 여 만원씩 내야 되는 사실은 엄청 저울질 하게 만든답니다.
과연 이 공연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공연일까. 이 공연을 못본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십만원이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그럴 가치가 있는 공연이라 해도 공연을 본 이후에 금전적으로 찾아올 후폭풍도 생각해야 되거든요.
금전적으로 따지자면야 ‘뮤지컬 관람’이라는 문화생활은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전 공연을 보러 갑니다. 당신들이 면봉만 하게 보이는 2층 A석이라도 공연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거든요.
일상에 찌들어 있던 나를 다른 시공간으로 초대해 준 당신들을 위해 커튼콜에서는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가끔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요.
‘멋진 공연이였어요. 수고하셨어요. 잘봤어요. 즐거웠어요.’
실수가 조금 있었더라도 외면하거나 야유를 보내지 않아요. 주머니사정은 팍팍하지만 당신들을 향한 박수는 늘 여유로운 그런 관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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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의 시각적 거리 + 심리적 거리

오늘 공연은 커튼콜이 하이라이트였어요.
다른 공연은 대부분 인사를 여러번 하고 퇴장하는데 이 공연은 모든 배우가 함께 귀에 착착 감기는 뮤지컬 넘버 서너 곡을 불러줬어요. 관객은 신이 나서 보통의 커튼콜 보다 몇 배는 열심히 박수치고 환호했어요. 마치 콘서트 같았죠. 2층 관객도 물론 신났었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2층 관객들은 하나 둘 박수를 멈추기 시작했어요. 1층 관객들은 아직도 콘서트현장을 즐기고 있는데 말이죠.
관객을 향해 슬라이딩을 하고 손키스를 보내고 눈빛을 맞추는 당신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다지 재밌지도 않고 딱히 볼 것도 없지만 끄기는 아쉬운 텔레비전을 보듯이.
똑같이 박수치고, 환호하지만 당신들은 2층을 바라보거나 외쳐주지 않았어요. 사실 면봉처럼 보이는 당신들이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봤는지 외면했는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분명한 건 2층 관객은 1층 관객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였어요.
소외감이랄까.
파티에 초대됐는데 행색이 초라하단 이유로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요.
VIP석 티켓을 산 손님이 매출에 더 큰 도움이 될거란 사실 잘 알고 있어요. 공연에 관심을 갖는만큼 주머니사정도 여유로운 사람이거나 일찍이 이 공연의 상대적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한 관객이겠죠. 당연히 고마운 사람들이죠.
하지만 A석에 앉았다고 해서 박수를 1/5만큼 치거나 당신들의 열정을 1/5로 절하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시공간을 연기하는 배우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예요. 커튼콜은 그 분리된 시공간이 만나는 짜릿한 시간인데 가격 차등에 따른 좌석레벨로 시공간 출입이 제한되다니요.
‘멀지만 2층에 계신 관객여러분, 고맙습니다’ 이 몇 마디면 공연 내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집에 갔을 텐데
혹시 라이센스 공연이라 커튼콜에 한마디 하는 것조차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하는 건가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조차?

 

소외감을 느낀 관객과 감동을 그대로 간직한 관객

이 둘 중 과연 누가 공연장을 또 찾게 될까요?
또한 기획사에게만 현실적인 티켓가격을 이제는 관객들도 현실적으로 느껴야하지 않을까요?
‘치사해서 VIP석 앉는다!’ 라고 욱해보지만 주머니는 여전히 찬바람이 붑니다.
가끔 조명 때문에 당신들의 눈, 코, 입이 그저 하얗게만 보일지라도 당신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2층 관객들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2층 A석 관객이 1층만 바라보는 배우들에게 외칩니다.
“저 여기 있어요~”

 

최유미 기자(yoom@thest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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