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앤줄리엣] 장르 변주의 즐거움

내러티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각색을 거치는 것처럼 여타 공연 장르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뮤지컬의 경우는 소설, 연극, 영화나 드라마, 오페라 등에서 이야기를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 ‘
무비컬’, ‘노블컬’과 같은 용어의 등장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매개로 전개되는 뮤지컬은 어쩔 수 없이 드라마가 약해지는 숙명에 놓이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뮤지컬이 기존에 잘 알려진 이야기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연극, 영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에서 변용되었다. 브로드웨이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리지날로 하여 미국적으로 재해석된 작품이다. 제트파와 샤크파의 대립, 토니와 마리아 커플, 댄스파티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이 원작의 설정과 동일하다. 줄리엣이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는 약을 먹는 설정 대신 뮤지컬에서는 마리아를 만나러 가는 토니가 샤크파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원작의 그림자에 벗어나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최고의 작곡가와 안무가인 제롬 로빈스가 있었다.
11월 프랑스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한국어공연이 앵콜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01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던 ‘로미오 앤 줄리엣’은 프랑스에서만 200만 명의 관객을 매료시켰고 캐나다, 런던, 암스테르담, 모스코바, 비엔나,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해외에서의 공연도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이에서는 총 2회의 오리지널팀 내한공연, 7월 한국어라이센스 공연에 이어 이번 11월 한국어라이센스 앵콜 공연이 오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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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앤줄리엣의 힘, 세련되고 차별화된 음악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레너드 번스타인이 있다면 ‘로미오 앤 줄리엣’에는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있다. ‘로미오 앤 줄리엣’도 역시 유려한 품격과 세련미를 지닌 넘버들을 가장 큰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불어 버전의 OST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음악들은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어버전의 넘버들도 불어 버전의 느낌을 잘 살려내면서도 나름의 색깔을 냈다.
극의 초반 웅장한 곡인 ‘베로나’를 무게감있게 소화한 영주(심재현)의 노래를 시작으로 쉴새없이 이어지는 곡들은 강한 비트를 바탕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임태경과 박소연은 7월 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공연한 후 10월에 결혼을 올린 실제 부부가 되었다. 팝페라 가수 출신으로 안정적인 임태경은 무리없이 로미오를 소화했다. 맑은 목소리와 가창력이 장점인 박소연은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임태경과 박소연의 듀엣은 저음부가 좀 보강되었다면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정재헌의 머큐시오가 지난 공연에서 개성있는 모습을 선 보였다면 이번 앵콜 공연의 김태훈 역시 성공적으로 배역을 소화해 냈다. 몬테큐 삼인방의 나머지 한 명인 벤볼리오 역의 박성환도 극의 흐름을 이끌며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 두 명의 그랭구와르가 등장하기 때문인지(전동석 로미오까지 포함하면 세 명) 공연을 보면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같은 프랑스뮤지컬이라서 그런지 실제로도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우들이 많이 캐스팅되었다.
구성면에서는 초연에서는 빠졌던 <내일(Demain)>이 추가되었다. 초연에서 2부의 넘버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앵콜 공연에서는 웅장한 합창인 이 곡을 통해 분위기 전환과 함께 비장미를 살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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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힘찬 안무, 화려한 의상

앙상블배우와 전문댄서가 같이 출연했던 초연과 달리 24명으로 구성된 전문댄서들이 보여주는 앵콜 공연의 춤은 훨씬 역동적이다. 비보잉이 가미된 안무가 특히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블루와 레드로 양분된 두 가문의 갈등은 힘찬 군무를 통해 무대 위에서 살아났다. 이들은 화려한 의상을 선보이는데,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초연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디테일을 많이 살린 의상은 득과 실이 고루 있어 보였다. 원작의 스토리에 기초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내러티브가 다소 약한 가운데 화려한 의상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과장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로 개관한 뮤지컬 전용극장인 우리금융아트홀은 음향전달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조명이 화려하고 세련되어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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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할만한 신나는 커튼콜

프랑스뮤지컬의 특징 중의 하나인 커튼콜은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도 여전히 화려하다. 특히 초연에서는 빠졌던 <20살이 된다는 것>이 앵콜 공연에서는 다시 포함되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비극적인 극의 결말에 진한 아쉬움이 남은 관객들은 기대치를 상회하는 격정적인 커튼콜에 열광하게 된다.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는 신나는 커튼콜은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다소 무거운 관객들의 기분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뮤지컬이면서도 원작인 비극의 특성상 후반부의 극적 구성이 자주 아쉬움으로 지적받지만 이 커튼콜을 통해 관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설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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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상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아마도 끝없이 변용될 것이다. 이야기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가게 마련이다. 2001년 초연 이후 프랑스에서는 공연되지 않았던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이 2010년 파리에서 다시 공연된다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공연했던 오리지널 공연팀의 캐스팅이 대부분 출연한다고 하는 2010년 파리 공연의 뮤지컬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한편으로 뮤지컬을 향한 우리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한국의 라이센스 뮤지컬이 오리지널을 넘어서는 날도 곧 오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도 해 본다.

 

한명섭 공연평론가(igotnext@thest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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