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어웨이크닝] 다층적 무대연출로 살아난 ‘젊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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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은 실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 전부터 여러 가지 화제를 뿌리며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사춘기의 성(性)을 다룬 이야기와 파격적인 무대 연출, 대담함, 노출 등등의 표현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통되면서 뮤지컬 자체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 수상’, ‘브로드웨이에서의 극찬’과 같은 외적인 지원군에 수많은 펜을 끌어모으는 배우들까지 합세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외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러한 외적 부유함이 과연 한국 무대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나아가는 길

독일의 극작가 베데킨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1891년 독일의 한 청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듯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인물들이 현실 세계를 이끌어가는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반항과 저항, 그리고 성(性)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엄격하고 근엄함을 드러내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극이 끝나는 시간까지 멜키어(김무열 분)와 모리츠(조정석 분), 벤들라(김유영 분)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은 시종일관 난관에 봉착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사춘기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은 나날임에 분명하다. 어른이 된 뒤에 회상하는 그 시절은 아련한 추억들로 가득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시간들은 하루하루 힘겨운 성장통을 앓아야만 하는 날들이다. 원작의 배경인 19세기 말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그리고 2009년 현재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만큼 사춘기라는 시간은 인간의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시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영원한 숙제처럼 아득하기만 한 그 시간들은 우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가온 것처럼, 결코 쉽지 않지만 어느 사이엔가 또 그렇게 지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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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가는 사춘기를 ‘이른 봄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른 봄은 ‘봄에 대한 예감은 사방에 가득하지만 정작 확인하려 들면 어느 하나 확실하게 잡히는 것은 없’고 ‘대신에 아직은 매서운 바람과 칼날 같은 추위가 여린 살을 찢’는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춘기’라는 시절은 ‘무언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감은 사방에 가득하지만, 어느 하나 인생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멜키어와 모리츠, 그리고 벤들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바로 그 사춘기의 길고도 험난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 방황하며 묻고 부딪치고 상처를 입는다. 물론 그 상처는 단지 신체적 상흔으로만 남지 않고 인생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견디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으로 남겨질 것들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바로 그 힘겨운 시절을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있는 그래도 담아내고 있다. 다수의 평들에서 나타나는 ‘파격적’, ‘새로움’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 자체의 ‘젊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또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어른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어른들조차 자신들의 사춘기 시절에는 반항과 저항, 정체성 혼란의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사춘기의 청춘들과 어른들의 대립은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 물음 자체에 천착하는 것은 무대 공연에서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가가 뮤지컬로서의 이 작품이 지닌 생명력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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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무대의 다층적 활용과 강렬한 뮤지컬 넘버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점은 ‘확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무대를 과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 안쪽으로 깊이 있게 자리 잡고 있는 무대 양쪽에는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무대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지 하나의 관람석이 아니라 무대장치로 설정되어 있다. 무대 저 안쪽 벽은 19세기 말이라는 배경을 표현하려는 소품들이 걸려 있고 그 벽 바로 아래 음악을 담당할 뮤지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무대 장치는 허공에 길게 내려져 있는 수많은 전구들이다. 조명의 역할과 어우러져 이 전구들은 정적인 무대 공간에 동적인 효과를 연출해낸다. 대부분의 라이선스 뮤지컬이 추구하는 역동적인 무대변화를 포기한 대신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선택한 방식은 바로 이러한 무대장치의 다층적인 활용이다. 21세기의 키워드 중 하나가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무대 연출은 사춘기라는 시절을 이야기하는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독특한 색깔을 갖게 해준다.l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기존의 뮤지컬과 차별화된 몇 가지 무대연출을 선보인다. 우선 고정되어 있는 무대 공간을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무대를 누비며 노래와 춤,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은 관객들이 앉은 무대석 사이사이에 앉기도 하고, 뮤지션의 자리에 앉기도 하며 하나의 무대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움츠리고 소극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모리츠가 폭발적인 락 넘버를 부를 때 힘찬 모습을 드러내듯, 배우들은 무대의 주변에서 하나의 소품처럼 자리하고 있다가 자신이 나서야 하는 순간들엔 강렬한 동작으로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암전을 통해 무대 뒤로 들어가 다음 순서를 준비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이러한 무대 연출은 배우들로 하여금 극 사이사이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들 입장에서는 보다 더 힘겨운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배우들이 공연의 시작과 함께 끝까지 무대 공간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인공과 앙상블 모두 극 자체의 필수적인 존재임을 스스로 자각하게 해줄 수도 있다. 송영창과 이미라가 연기하는 다양한 성인 남녀의 모습은 다양한 캐릭터의 구분이 다소 모호한 점이 아쉽지만, 마치 멀티맨처럼 정적인 흐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측면에서 극 전체의 구성에 긍정적으로 기능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이러한 무대연출은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관람 방식과 태도에 변화를 초래한다. 보통의 무대극이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깊이 빠져들도록 해서 특정 인물 혹은 극 전체를 자신과 동일시하도록 만드는데 반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그러한 동일화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굳이 브레히트식의 소격효과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방식은 일반적인 수동적 관람 태도에 능동적 변화를 야기한다. 특히 배우들이 상의 안주머니에서 마이크를 꺼내거나 스탠드 마이크를 가져와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 공연은 스스로의 벽을 허물듯이 극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마이크 사용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극 중 인물들로 하여금 극 자체의 안에서 무대 위 현실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듯한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 자체와 무대 위 현실, 그리고 관객들이 자리한 실제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극 자체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무대 좌우에 자리한 무대석의 관람객들의 경우는 한층 더 능동적인 관람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관람객인 동시에 무대 위에 자리한 배우이자 하나의 무대 장치이기 때문에, 극을 관람하는 그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무대 아래 관객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경계 넘기의 무대 연출이 일부 관객들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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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보다 더 많은 애정을 쏟고 있음은 다층적 무대연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음악과 뮤지컬 넘버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리지널 공연의 OST의 매력에 빠져든 이들고 있을 만큼 완성도 있는 뮤지컬 넘버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사춘기라는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강렬한 락을 중심으로 뮤지컬 넘버를 구성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어떻게’의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특히 모리츠의 ‘The Bitch Of Living’와 멜키어의 ‘Totally Fucked’는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춤과 어우러져 저항과 일탈의 분출을 노래한다. 욕설을 포함한 거친 언어들이 단순히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음악과 어우러져 인물들의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벤들라의 ‘Mama Who bore me’나 두 가지 사랑의 형상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Touch me’의 경우는 강렬한 락 넘버와 함께 사춘기의 고뇌와 정체성 혼란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니 ‘제2차 성징’이니 하는 수식어들이 지나치게 달라붙어 있는 사춘기라는 시절을 보내는 인물들의 이야기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저항과 고뇌의 시간을 무대 위에 그럴 듯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파격, 노출과 같은 공연 외적 이슈들로 인해 생겼던 궁금증은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어디론가 사라진다. 공연을 관람한 후 궁금증이 있었던 그 자리엔 그 어떤 작품 외적 요소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자리엔 배우들의 강렬한 모습과 다층적 무대연출의 변화무쌍함, 그리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능동적으로 바라본 내가 앉아 여운을 즐기고 있다.

* 관람일 – 2009. 07. 23. 오후 8시 공연
*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캐스팅 – 김무열, 조정석, 김유영 외 다수

 
하린(hareen1@thest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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