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미완의 실험인가, 재해석의 가능성인가

프롤로그

소설가 김영하는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통해 데뷔한 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단편과 장편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보여주는 김영하만의 색깔은 불명료하고 동시에 모호하다. 혹자들은 개성 넘치는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의 신선함에 매료되기도 했고, 혹자들은 현실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판타지적 스토리 전개와 묘사에 끌리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텍스트의 흐름을 통해 시각적 영상을 자연스럽게 도출해낸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그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듯 영화판으로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단편 <흡혈귀>가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연극 (김영하의) <흡혈귀>(이하 <흡혈귀>)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있다.

 

소설에서 연극으로, 그 모호한 재생
김영하의 소설들은 흥미롭다. 그러나 하나의 결로 수렴될 수 없는 다층적 형상을 다분히 모호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그의 소설들은 손을 내밀어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시에 결코 가볍게 소화될 수 없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흡혈귀>의 경우 그 흥미로움이 더 짙게 드리워 있으며, 그로 인해 보다 더 불명료한 형태로 다가온다. 바로 이 소설이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정보를 듣고부터 기대와 우려가 앞 다투어 샘솟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어둠만이 자리한 소극장 무대에 배우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아니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듯 한 남자(남편 역 박정환)의 목소리가 먼저 다가온 순간부터, 다시 그의 목소리로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기대와 우려는 공존하고 있었다.

장편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발표한 바 있는 ‘소설가 김영하'(물론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가 극 중 작가이자 화자로 등장하고, 그에게 배달된 편지 속 이야기의 화자 ‘김희연'(이라는 실제의 인물이 아닌 그 이름)의 존재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희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화자는 이야기의 재연을 통해 세 명의 여인으로 무대 위에 그려진다. 소설에서 드러난 매력적인 모호함을 고스란히 따르며 진행되던 연극이 자신만의 매력적인 특성을 선보이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김희연’이라는 캐릭터를 세 명의 여배우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연기하는 것. 이것은 무대 위에서 실제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 보인다는 연극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탁월한 선택이다. 물론 이 선택으로 인해 ‘김희연’이라는 캐릭터는 하나의 정형화된 형상으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그려질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실제 작가 김영하에서 시작해 극 중 화자인 작가, 그리고 다시 그에게 배달된 편지 속의 작가 ‘김희연’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남편’에 이르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조는 점점 더 미궁으로만 향한다. 직접 눈으로 보며 귀로 듣고 있지만, 도무지 극의 스토리라인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볼 때 이것은 상당히 문제적인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흡혈귀>에서의 이러한 전개 방식은 원작의 모호한 매력을 보다 더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역시 ‘모호함’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발산하고 있다.

 

‘김희연’으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
연극 <흡혈귀>의 이야기 구조를 간략하게 도식화하면, 극 전체의 화자가 편지의 내용을 읽으며 외부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편지 속 이야기가 동시에 무대 위에 펼쳐진다. 편지 속 이야기의 화자 김희연은 자신의 남편과의 만남에서부터 신혼여행에서의 일화, 남편을 흡혈귀로 확신하게 되는 장면의 이야기를 무시간 순으로 들려준다. 그 내부 이야기 속에서 화자인 김희연은 세 명의 여배우가 연기하고 있으며, 남편만 박정환이 고정적으로 연기한다. 이러한 설정은 마치 한 남자가 세 명의 여자와 세 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아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 번의 부부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흡혈귀들은 거세당했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흡혈의 자유와 반역의 재능을 헌납당했고, 대신 생존의 굴욕만을 넘겨받았다.”라고 나지막이 말하던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흡혈귀로 추정(?)되는 남편. 바로 그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죽지 못한 채 현실의 삶을 반복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듯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건조하고 무의미하게만 다가온다.

그렇다면 흡혈귀로 추정되는 남편에 관해 장문의 편지를 쓴 김희연이란 여자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무대 위에는 분명 세 명의 여배우가 ‘김희연’이라는 캐릭터를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연기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내부 이야기를 극 전체의 외부 화자인 작가에게 (편지를 통해) 들려주는 화자 ‘김희연’의 존재가 목소리를 통해 등장한다. 그렇다면 ‘김희연’이라는 캐릭터는 세 명이 아닌 네 명의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규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무대 위에서 그녀의 편지를 읽고 있는 외부 화자 작가가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 생각엔 아무래도 바로 그녀가 흡혈귀인 것만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규정짓기의 실패에서 오는 혼란 때문일 것이다. 존재를 규정지을 수 없는 ‘김희연’이라는 이름의 화자가 (편지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분명 ‘흡혈귀로 추정되는 남편’을 말하고 있지만, 외부 화자는 그 남편이 아닌 ‘모호한 형태의 김희연이란 이름’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 넘기, 그 모호한 확장
내부 이야기 속에서 ‘김희연’은 자신을 둘러싼 일들을 낱낱이 알고 있는 남편의 신기한 능력에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남편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며 다른 방향의 답을 내뱉는다. 아내 ‘김희연’은 또 묻는다. 어떻게 머리카락 하나, 어떤 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느냐고. 남편은 그것이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청결함 혹은 결벽증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 ‘김희연’은 세월의 흔적들을 담은 ‘관’을 본 뒤 남편이 흡혈귀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아마도 그녀가 외부 화자인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속 작가인 동시에 작품 속 허구적 등장인물인 외부 화자인 작가에게 있어 ‘김희연’이라는 이름으로 발송된 편지 속 이야기는 어떻게 수용될까. ‘흡혈귀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흡혈귀로서의 모든 습성을 버리고 인간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흡혈귀’의 형상을 떠올릴 수도 있으며, 자신의 동료 문인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마치 실제 현실 속 작가 김영하가 연극 속 화자로 등장하듯, ‘김희연’이란 이름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흡혈귀 역시 극 중 외부와 내부 이야기를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실제와 허구의 경계 무너뜨리기’는 분명 소설가 김영하의 장기이자 그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매력 중 하나이다.

연극 <흡혈귀>는 바로 그러한 경계 넘기의 매력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소설 <흡혈귀>에 대해 ‘김희연’을 ‘독자’로, ‘남편’을 ‘소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듯이, 연극은 다양한 해석과 수용의 문을 과감하게 열어놓고 있다. 극 중간 중간 모호한 성격으로 종종 등장해 외부 화자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미미’라는 존재가 결국 화자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이러한 확장의 한 형상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화에 물을 주고, 정리된 소품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으며 화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미미’가 자신을 향해 떠나갈 것을 다그치는 화자를 향해 외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에필로그
연극이 전반적으로 절제된 연기와 대사처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작품의 성격에 잘 맞는 듯한데, 남편의 목소리는 무대 뒤쪽까지 전달되기엔, 그리고 감정의 폭을 전하기엔 너무 압축되어 있다. 게다가 암전의 반복된 사용과 함께 전체적으로 조명의 활용이 어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극의 흐름이 관객을 압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연극 <흡혈귀>는 미완의 실험처럼 보이기도 하며, 원작 소설의 재해석에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엿보인 정도로 ‘모호하게’ 자리하고 있다.

 

[hareen’s comment]

작품 원작 소설의 모호함을 따르는 다소 무모한 시도! 소통이 관건!
연기 절제된 행동과 목소리 연기, 흡인력은 다소 떨어짐~
무대 간결한 소품들의 활용. 조명의 극단적 절제를 활용하는 방식의 문제
공연장 소극장답게 아담하고 적당히 불편한 점들~
포커스 줄거리의 이해가 아닌, 호흡을 느끼려 노력해야 할 듯~

2006년 8월 | 인아소극장

 
하린(stream@thestre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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